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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팽이♪ 2012/04/10 18:07


지난해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올린 네 작품 중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어서 2012년 재공연을 하게 된 작품이다. 기자간담회가 있던 재공연 첫 날 보러갔다.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좀 거슬렸지만 그런 대로 볼 만했다. 공연 후 기자간담회까지 보고 나왔으니 퉁치기로.

서글픈 인생에도 수고했다고 박수쳐줄 수는 없냐고, 그런 순간이 온다고 믿고 지금의 어둠을 긴 암전이라고 믿어보자고 극중 인물과 관객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는 연극이다.

상처, 트라우마, 힐링... 

이 시대의 한 경향이랄 수 있는 프로이트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키도 했다. 하지만 꼭 프로이트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존재란 늘 과거의 바탕위에 서 있는 것이므로, 굳이 그런 식으로 생각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상처와 그에 따른 후유증은 늘 있어왔지만 이제야 그것들을 들여다볼 여유가 된 것이거나, 아니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곪아버린 시대이거나. 과거와 비교해 너무 많은 것들에 치이게 되었으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만도 하지 않나 싶기도.

매일매일 뉴스를 통해 접하는 스펙타클한 일들에 무감해져 있어, 그저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들..  '단순성폭행'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문제인식처럼. 그래서 반지의 대사에 많이 아팠다. 찔렸다.

기자간담회 때 연출하신 분이 말한 것이 또 나를 부끄럽게 했다. 

"사람들은 경제적 성공 뿐 아니라 마음의 성공도 요구하는 것 같다. 상처를 쉽게 극복해 나이스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들 자신이 상처를 다룰 의지가 없거나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오히려 비난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나.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껴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애쓴다고 격려해줄 수는 없나." 

대충 이런 말이었다. 수고한다, 참 애쓴다, 참 수고하고 있구나, 당신. 응원할게. 우린 다 약한 존재들이잖아. 서로 보듬고 가자. 연출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게 되뇌었다.

슬픈 전사와는 달리,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들은 시종일관 재치가 넘쳤고, 일어나는 일들도 재미있었다. 극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어두워지지만. 

무대가 참 예뻤고, 초연과 다른 점은 마임이 추가되었다는 것. 극중 인물들의 심리를 전문 마임이스트가 나와 연기했다. 몸의 언어가 말보다 더 큰 임팩트를 주기도 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풍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극중에서 정란과 반지는 여러 연극의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극놀이를 하는데, 그 장면이 참 좋았다. 재미있게 잘 연출한 덕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연극하던 애들이 그러던 것도 생각나고. 학교 영화제 끝나고 한창 영화대사로 농담 주고 받던 것도 생각났다. 

정란이 말한다. "연극을 접한 순간. 난 숨 쉴 수 있었어. 진정 내가 찾고 있던 내 안의 말을 인물들의 말 속에서 만날 수 있었죠."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연극 대사들이 주는 카타르시스. 하지만 Y는 그래서 연극이 싫다고 했다.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라고. 눈물 한 방울, 표정 하나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범위를 좀 더 열어놓을 수 있는데 그걸 차단해버린다고. 그 말도 이해가 갔다.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영화에서 잦은 플래시백을 쓰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듯이, 전사를 줄줄 대사로 푸는 연극도 공감을 200% 얻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세 인물 모두 전사가 너무 화려하기에 더욱. 그래도 연출력으로 커버가 좀 되긴 했지만. 

우람의 엄마 정란이 반지에게 뽀뽀하는 장면에서는 '몸'과 '몸'이 만나는 즉물적 실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를 생각했다.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타인의 척박한 삶에 공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타인의 아픔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도대체 이해한다는 것이, 공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C가 생각났다.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거짓이 아니냐고. 우리는 서로에게 절대 타자이기에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주기를 바랄 때 자신은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위로하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무의미한 것 같다고 했던. 

요즘 C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하다. 김탕 씨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너무 불편하고 힘든 것이라고.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좀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겠냐고.  

작가는 무척 젊었다. 젊다기 보단 어렸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내 또래거나 그 위처럼 보였다. 30은 절대 안 넘었을 것 같은. 자신의 작품을 올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이렇게 전사많은 이야기를 쓰는 그녀는, 과연 어떤 경험들을 갖고 있을까. 저렇게 밝고 아름다워보이는데 말이지. 

일어나는 일들이 인물들의 주체적인 선택에 따라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선택에 영향을 받거나 우발적 사고들로 점철되는 건 좀 아쉬웠다. 하긴, 우린 타인과 늘 연결되어있고, 대부분의 경우 우유부단하니까. 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살면서 온전히 주체적인 선택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우유부단함이 불러온 비극이라고 치면 자신의 책임이 아니랄 수도 없고.... 

처음부터 우람을 다시 키우겠다고 하는 정란의 대사는. 또다른 재앙의 씨앗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오지랖 넓은 생각도 들었다. B를 B로서 보지 못하고 A를 투사한 B가 될테니까... 물론 작가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

어쨌든 삶을 계속 이어갈 힘을 주는 작품을 쓰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했던 작가의 말대로라면, 작가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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